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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다시보기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김경림

by 피그통통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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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집어든 책인데 보석 같은 책을 발견했네요.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육아 에세이라고 할까요? 그러면서 깊은 울림을 주고, 다부진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아픈 아이를 육아하며 겪었던 경험과 느낌을 담담히 써 내려간 글에서 저자의 내공이 느껴져요. 마음이 아프기도 기쁘기도 합니다. 제가 표시해 뒀던 글 귀들입니다. 

 

때론 '내 엄마와 비슷하게', 때론 '내 엄마와 다르게' 여자들은 엄마 노릇을 해 나간다. 즉 우리는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좋은 엄마'의 기준에 따라 엄마의 길을 걷는다. 
'좋은 엄마'의 이미지는, 이 사회가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가족에게 필요한 돌봄 노동을 '엄마라는 이름의 여성'이 담당하는 영역으로 제한하기 위해서 마련한 프레임이다. 

- '이상한 정상가족'이란 책에서도 읽어보았던 이야기였어요. 최근에야 알았어요. 당연한 듯 생각했던 엄마의 수고와 희생, 그리고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하는 역할들..  엄마가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구조는 사회가 만든 것이었어요. 무보수로 여성에게 돌봄의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 만든 장치 말이죠. 

 

엄마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아이에게 닥치는 일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엄마는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는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제 운명을 감당할 때 그저 옆에 있어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엄마가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살 수 없는 이유 아닐까요. 아이가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도록, 그럴 힘을 얻도록,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주고 조력자의 역할을 잘해줄 수밖에요.

 

내 괴로움의 뿌리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끝없는 자기 연민. 아이를 걱정한다고 했지만, 내 인생 걱정이 먼저였기 때문에 어떤 걱정도 아이에게 도움이 될 리 없었다. 오히려 아이는 '걱정하는 엄마'를 걱정하며,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을 속이며 원하지 않은 일을 감당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아이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기만 했다. 

-인간은 참으로 자기중심적입니다. 어쩌면 모성애보다 강한 것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가끔은 두렵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은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나의 욕구 때문은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 보곤 합니다. 

 

엄마 스스로 해결사가 되기를 멈추고 그저 빈 공간으로 있을 때 펼쳐지는 것이다. '엄마'라는 공간에 아이가 자기 존재를 펼치는 마법 말이다. 

-침묵과 여백, 멈춤의 힘은 참 큽니다. 

 

죽지 않고 이어지는 생명은 없다는 것, 모든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을 느낄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 가장 평화롭고 아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했다. 끝까지 아름답고 평화롭게 존재할 수 있도록, 끝까지 지극히 섬길 일이었다. 

-아픈 아들 곁을 지키며 괴로워하다 끝내 알아차린 세상의 진리와 이치. 작가님의 통찰력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화를 내고 싸우는 일'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말하는 일'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잠깐 멈추고 엄마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세요.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구나', '어떻게든 잘해 보고 싶은 거구나'하고 말하면서 가슴을 토닥이면 안절부절못했던 성마른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그러고 나면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엄마였을 때 나는 가장 뜨겁게 사랑을 했고,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면서 존재했다. 엄마였을 때 나는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었고, 가장 끔찍하게 절망했으며, 머뭇거리지 않고 두려움을 안은 채 삶에 뛰어들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글 귀입니다.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아이들은 나를 온전히 채워준.. 고맙고 은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 아이들이 나를 생생하게 살아 있게 만드네요. 

 

엄마로서의 경험치는 일을 시작하는데 자양분이 됩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능력,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엄마'라는 역할을 하면서 훨씬 강해지지 않았던가요? 예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서 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경험으로 쌓은 능력은 알맞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괜히 '아줌마 파워'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닐 겁니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와 엄마가 되고 난 후의 나는 정말로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숱한 날을 엄마로 지내며, 아프고 괴로워하면서도 성장했어요. 레벨이 달라졌죠^^

 

재미나 의미가 없어지면 그때부터 그만둘 생각을 했다. 결정타는 '내가 성장하는 게 아니라 소모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올 때였다.

-이 글귀를 접하고 나니, 떠날 때(?)가 언제인지 그 적절한 시기를 알 것 같았어요.

 

엄마를 졸업하는 시기는 학교처럼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그만둘 때처럼 내가 정하는 것이었다. 엄마를 졸업한다는 건, 아이 삶의 주도권이 명실상부하게 아이에게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며, 아이가 혼자 능히 자신의 의식주를 돌볼 수 있음을 믿는 것이며, 엄마라는 역할에서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돌봄 노동을 제거하는 일이며, 앞의 모든 일을 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었다. 

-아이를 마음에서 몸에서 독립시키는 방법까지 일러주십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마음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를테면 욕심 같은 것들요.. 진리는 언제나 심플합니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어요. 엄마는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통로 일 뿐, 우주가, 자연이 아이를 키웁니다. 엄마는 그저 아이 옆에 머무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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